1. 대학병원에서 시작된 간호사 인생
저는 대학병원에서 간호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시간을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다가, 육체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지친 상태가 찾아왔습니다. 결국 사직을 결심했고, 1년간의 공백기를 가졌습니다.
다시 병원 생활을 시작했을 때 선택한 곳은 로컬병원이었습니다. 대학병원과는 너무나 다른 환경에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적응해 나갔습니다.
그 사이 저에게도 인생의 큰 변화들이 있었습니다. 결혼을 했고, 임신을 했고, 어느새 어엿한 학부모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이가 자라는 환경에 맞춰 근무 조건을 조율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직도 잦아졌습니다.
2. 척관절병원, 그리고 수간호사가 되기까지
30대 중후반이 되면서 이제는 한 곳에 정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선택한 곳이 척관절병원이었습니다. 몸은 고됐지만, 매달 들어오는 월급을 보며 버텼습니다. 소위 말하는 '금융치료'를 받으며 꾸역꾸역 일을 이어갔고, 어느새 저는 그 병원의 수간호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함께 일하던 몇몇 의사 선생님들이 새로운 병원 개원을 준비하며 팀을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 그 팀에 포함되었습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근무 조건과 월급을 약속받고 이직을 결정했습니다.
3. 새로 문을 연 병원, 현실은 달랐다
하지만 실상은 약속과 달랐습니다. 오히려 월급은 줄었고, 새로 문을 여는 병원 특성상 신경 써야 할 일, 새롭게 만들어야 할 시스템, 다른 부서와 조율해야 할 사안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처음 문을 여는 병원은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진 상태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부족한 부분이 많았고, 무엇보다 함께 일하는 인원 자체가 적었습니다. 그럼에도 함께한 직원들은 저마다 사명감과 주인의식을 가지고 정말 열심히 일해주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원장님들에게 다소 불편한 존재가 되어갔던 것 같습니다. 월급 인상이나 인원 충원 같은 요구 사항이 많았고, 적은 인원으로 병원을 운영하다 보니 원장님들의 뜻을 온전히 따라드릴 수만은 없었습니다. 또한 환자를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절대 사고가 나서는 안 된다는 강박 속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다소 힘들게 한 부분도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그 당시 함께했던 직원들은 지금도 저와 함께 일하고 있고, 개인적으로도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만둔 직원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그만둔 이유 역시 저보다는 근무 환경에 대한 불만이 더 컸습니다.
4. 지쳐가는 나, 그리고 아이
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일하면서 저는 속마음을 거의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원장님들이 저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일한 만큼 상처도 컸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며 저 스스로도 너무 지치고 힘들었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집에 있는 가족들에게까지 미치고 있었습니다. 특히 아이가 저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잠시 쉬어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제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된 듯했습니다.
5.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육아휴직
나이도 있고 상황도 있다 보니 쉽게 사직을 결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한 번도 써보지 못했던 육아휴직을 짧게 3개월만 사용해 스스로를 리프레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결정을 전달하자 대표원장님을 비롯한 원장님들의 반응은 격렬했습니다. "수간호사가 육아휴직을 어떻게 쓸 생각을 하냐", "책임감이 없다" 등 여러 모진 말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육아휴직을 고집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의 마음이 우선이었기 때문입니다.
자리를 비우는 동안 업무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정리하고 인수인계를 마친 뒤 휴직에 들어갔습니다.
6. 복직 첫날, 돌아온 것은 권고사직
복직을 한 달 앞두고, 저는 원장님들이 제가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돌아오면 불편할 것 같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모른 척 예정대로 복직했습니다. 그리고 출근 첫날, 저에게 돌아온 것은 권고사직 통보였습니다.
20년 넘게 간호사로 일하며, 대학병원의 고된 시절을 버텨내고, 새로운 병원을 함께 일으켜 세운 그 모든 시간이 이렇게 마무리된다는 것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앞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