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복귀와 동시에 찾아온 권고사직
육아휴직을 마치고 다시 출근하던 날, 설렘보다는 긴장이 앞섰다. 오랜만에 유니폼을 입고 병원 문을 들어서던 그 순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런데 복귀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마주한 것은 뜻밖에도 권고사직 이야기였다. 아이를 낳고 돌아온 자리가 이렇게 불안정할 줄은 몰랐다.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거절했다. 그동안 쌓아온 경력과 지금의 상황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권고사직을 거부하자 이번에는 보직전환 이야기가 나왔다. 문제는 지금과 같은 근무시간, 같은 월급, 같은 직책 조건으로 갈 수 있는 부서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었다. 결국 임시방편으로 수술실 안에 있는 공급실에 자리를 두고, 예전에 하던 업무 중 서류 작업 일부를 가져와서 처리하는 한편, 공급실 업무도 함께 도와가며 애매한 위치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2. 선배의 연락, 그리고 뜻밖의 이직 제안
그렇게 어정쩡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내 소식을 전해 들은 선배 간호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른 병원으로의 이직을 제안하는 내용이었다. 조건을 들어보니 놀라웠다. 지금 다니는 직장과 근무시간이 동일했고, 직책도 같았으며, 월급 역시 차이가 없었다. 이 정도면 거의 완벽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거리였다. 지금 직장은 대중교통으로 15분이면 충분한 거리에 있지만, 새로 제안받은 곳은 편도로만 1시간 20분이 걸리는 곳이었다. 만약 아이가 조금 더 자랐거나, 혹은 아직 아이가 없는 상황이었다면 망설임 없이 이 제안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돌봐야 할 아이가 있었고, 동시에 직장인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업을 준비하고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3.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고민들
이 제안 앞에서 나는 며칠 동안 마음이 복잡했다. 지금 다니는 병원을 그만두고 다른 곳에 새로 취업한다 해도, 현재만큼의 월급을 받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경력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처럼 아이를 돌보기에 적당한 시간대와 환경을 갖춘 자리를 다시 만나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부업을 알아보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지금 직장에서 버티다가 지쳐서 결국 지금보다 더 좋지 않은 조건의 병원으로 떠밀리듯 이직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그런 상황을 생각하면, 거리 문제만 없었다면 이번에 들어온 이직 제안이야말로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만약 결정할 시간이 조금 더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나를 어느 부서로, 어떤 방식으로 배치할지가 명확히 정해졌더라면, 혹은 준비 중인 부업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최소 3개월 정도만이라도 지켜볼 시간이 있었더라면, 나는 아마 어느 쪽이든 망설임 없이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너무나 애매하고 불확실한 시기였다.
4. 결국 내가 내린 선택
오랜 고민 끝에 나는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다.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눈치를 보고, 뒤에서 오가는 수군거림을 견디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은 이 자리를 지키면서 부업을 준비해 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안정적인 조건의 이직 제안을 뒤로하고 불확실한 현재를 선택한 셈이다.
이 결정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나 자신도 아직 확신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야만 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앞날을 미리 내다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마음이 문득문득 든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것 아닐까. 완벽한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 그 순간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책임지며 살아가는 것. 지금의 나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며, 언젠가 이 시기를 돌아보았을 때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육아와 커리어, 그 사이 어딘가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 글이 작은 공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